그래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존엄한 가난’을 이야기한다. 그는 아이티의 가난한 빈민가 사람들을 위해 싸워온 신부다. 끊임없는 내란과 독재에 시달리며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아이티에서 네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네 번 모두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물러나야 했다. 그의 총 집권 기간은 불과 5년 8개월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는 군대를 해산하고, 국영기업의 조건 없는 민영화를 거부했는가 하면, 공공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교육과 보건의 사회적 질을 높였고, 최저임금의 인상을 이끌어 냈다. 이 책은 아리스티드가 세계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여기에는 그의 아이티 민중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고, 특히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배려가 나타나 있다. 또 부의 추구보..
다시 찾아온 빙하기, 연일 영하의 날씨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세상의 눈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옥상을 마지막 피신처로 정했다. 여기 눈들은 아마 오는 봄까지 녹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눈들은 우리만 아는, 5층 사람들이 몰래 숨겨놓고 있는 눈이다. 저 큰길의 눈들은 질퍽거리는 똥색으로 변한지 오래다. 신경질적인 사람들의 발길이 한몫했다. 거침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검은 바퀴는 또 어떤가. 그런 와중에 옥상의 눈들은 다행히 안녕하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해서 밤새 내린 눈처럼 쌓인 하얀 눈을 보는 기쁨을 누가 알까. 그렇게 오는 봄까지 그대로 있어주라. 질척거리지 말고 그냥 그대로 증발해서 햇빛 속으로 타들어 가라. 이것이 우리 옥상으로 피신 온 너희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일 거다. 옥상 ..
2009년의 시작 포스팅은 1월 5일 쓴 소한_다시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며 였군요. 절기별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고 쓰기 시작한 건데, 이는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의 절기별 포스팅을 보면서 비슷하게 따라해 보고자 했던 건데, 거의 하지 못했죠.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농촌 중심 사회의 필요에 맞게 만들어진 시간 구분이죠. 그에 맞춰서 저 역시 태양의 움직임을 알고 그에 맞는 자연적 삶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네요. 그러고 보니 올해 1월달은 그렇게 춥지 않았나 봅니다. 그에 비해 내년 1월은 연초부터 강추위가 예상된다고 하니 자전거 타기는 다 틀렸네요. 삶에서 여행은 그때그때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오죠. 12월 크리스마스 전후로 해서 다녀온 춘천 여행기가 1월..
2층으로 자리를 옮긴 직원이 남기고 간 빈 화분에 그동안 선인장을 키워오다가 그만 선인장이 죽어버렸다. 남아 있던 화분이 유리로 된 거라 물이 안 빠진다. 그래서 물에 담가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이 있는지 물어보니, 꽃가게 아가씨는 아이비를 보여주었다. 이파리가 백악기 시대 공룡 발자국처럼 생겼는데, 조그마한 게 앙증맞은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비를 심어보았다. 3000원이면 참 저렴하다 싶으면서도 이 작은 생명 허투루 보살피다 죽이면 어쩌나 걱정된다.
그동안 휴대전화라면 당연히 공짜폰만 써왔다. 나에게 MP3니 카메라니 DMB 등은 최첨단 휴대전화에 딸려 오는 부가기능들은 그다지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폰은 달랐다. 내가 아이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트위터를 하면서 아이폰에 대해 오가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이다. 오가던 이야기들에서는 아이폰의 기능적이인 장점들에 대한 말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통신시장에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가의 장비를 들이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것만은 아니다. 그거야 나에게는 그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좀더 원초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00원짜리 휴대폰, 게다가 전화통화도 별로 하지 않는 휴대전화를 보다 다양한 ..
||| 어처구니 없는 잡일 "악보 한글 데이터는 어떻게 하죠?" "하시라('면주'의 일본식 발음, 편집 용어)도 적어야 하나요? 쪽수 표시는?" "들여쓰기는 해줘요? 말아요?" "박자 표시는 그냥 약자로 한다고요?" '표기 오류 검색용 파일' 제출을 위한 작업을 하던 중 나온 수많은 논란 거리 중의 하나다. 그랬다. 김학원은 편집자가 하는 일이 3000가지나 된다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 없는 잡일'도 편집자의 '일'이라고 명명된다. 위대하신 교육과정평가원의 명령을 출판사에서는 어찌 거역할 수 있겠나. 모든 일은 말단 편집자들에게 다시 우박처럼 쏟아진다. 한주동안 그 일에 시달렸고, 새로운 한주가 시작된 오늘도 여전히 그 일에 낑겨 지내고 있다. 이 일로 인해 정작 해야할 작업이 미루어진다..
아내의 임신 이후 함께 여행하는 것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물론 아내의 임신보다는 그동안의 교과서 업무가 더 큰 이유일 테다. 이제 교과서 업무가 마무리 된만큼 더이상 그동안의 아내와 나의 수고를 위로하는 여행을 떠났다. 어쩌면 태아와 함께 하는 최초의 가족여행이 아니었을까. 강릉 여행을 위해 하루를 꼬박 매달렸더랬다. 코스를 짜면서 추운 겨울을 대비해 박물관 코스를 넣었으며, 바깥을 돌아다닐 때는 한낮을 주로 잡았고, 꾸준히 걸을 수 있는 장소로 선정했다. 강원도 강릉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식당을 검색해 보았고, 숙소 역시 가격과 위치보다는 휴식에 맞추어 예약을 하였다. 그러나 숙소의 경우 예약이 좀 늦은감이 있었다. 괜찮은 팬션은 이미 다 예약이 차 있었다. 좋은 팬션을 숙소로 하겠다면 최소 한..
아내 덕분에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다. 이른 아침 정갈하게 반찬을 담는 아내의 손길을 보면 하루의 시작부터 행복이 가득하다. 도시락에 담기는 정성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도시락을 다시 싸게 된 게 얼마만일까. 초등학교 때는 도시락을 놓고 등교한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학교까지 찾아오신 적도 있다. 집안 사정을 모르지 않아 반찬 투정은 생각도 못 했지만, 그래도 정성들여서 싸주신 밥 위에 잘 부쳐진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 있으면 행복했다. 겨울철에는 교실 한 가운데 있는 둥글고 못생긴 난로에는 항상 양철도시락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주변에 보온도시락들이 곁불을 쬐고 있곤 했고, 간혹 불이 너무 세서 밥 타는 냄새가 교실에 진동하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다시 도시락을 싸게 된 건, 경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