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 감기는 좀 참으면 나았다. 혹은 약국에서 대충 지어준 감기약만 먹어도 낫는 가벼운 질환에 불과했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접어드니 몸의 저항력이 예전 같지는 않나 보다. 지난 월요일 K선배와 밤늦도록 진하고 거칠게 술을 마신 후로 감기 기운이 오더니 급기야 몸살까지 찾아와 앓아눕게 만들었다. 어제는 간신히 일어나 병원을 찾아갔다. 젊은 의사 선생은 이런저런 문진을 하고 목과 코와 귀를 살피더니 목이 많이 부었다고 한다. 처방전을 받고, 나오는 길이 참 씁쓸하다. 하는 일도 없이 술 때문에 몸을 혹사시키는 짓을 했으니 부끄럽기도 하다. 나름대로 건강을 잘 챙긴다고 자부했으면서도, 한순간 흐트러졌던 그 틈으로 찾아온 감기에 이렇듯 맥을 못추고 말았다. 20대에는 따로 운동을 안 하다가, 30대가..
제목을 쓰고 나니 어떤 표현이 맞나 궁금하다. '물이 새다'가 맞는지 '물이 세다'가 맞는지... 맞춤법이라는 게 이렇게 작대기 하나 점 하나 차이로 의미가 달라지는 거라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아무튼 여기서는 '천장에 물이 새다'라고 썼다. 문맥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여지도 있으니 말이다. 동생이 작은 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들어가 보니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물이 바닥에서 올라올 리는 없고, 아마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바닥에 번진 것일 텐데, 짐작할만한 곳을 찾아봐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의자를 놓고 책상에 올라가니 그제서야 구석진 곳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게 보인다. 일부는 벽을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급하게 물을 받을 그릇을 받쳐놓았다. 물이 어떻게 새고 있는지 알수 없다. 윗집에서 어떤 공사를 ..
광릉숲을 찾았다. 자동차로 찾아갔더니 대략 50여km가 넘는다. 숲을 사랑한다면서 나홀로 자동차족이 되어 적지 않은 양의 오염물질을 길에 쏟아낸 것이다. 숲을 가면서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숲에 가서 깨닫는다. 광릉숲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숲이다. 그래서 서울의 허파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울창한 산림이 뿜어내는 산소의 양이 엄청나다. 동서로 4km 남북으로 8km에 이르며, 경기 남양주, 포천, 의저부시 등 3개 시에 걸쳐 있다. 1468년 세종 때 '능림'으로 지정된 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비가 한참 왔다. 비가 왔는데도 가게 된 것은 이곳이 인터넷 예약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취소할 수도 있고 토요일까지 개방하니 남는 시간에 갈 수도 있었다. 굳이 취소하지 않은 이유는 비오는 수요일이기 때문이..
지난 토요일 친구 홍의 결혼식.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과정에서 만난 친구인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은 작년에 알았던가. 아무튼 결혼생각이 별로 없던 친구가 좋은 사람을 만나 개과천선해 결혼에 골인했다. 나에게 결혼식 스냅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한시간 반 전에 집을 나왔건만,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촬영할 때나 도착할 수 있었다. 어차피 메인사진가가 있다고 하지만 다양한 스냅사진을 찍어 줄 사람도 필요하다는 게 대세다. 그런데 지각을 하고 말았으니... 뒷풀이까지 참석하고 싶었지만, 동문회 행사 때문에 나왔다. 결혼식 전과정에 같이 있어본건 처음인데, 정말 밥먹을 틈도 쉽게 나지 않는 신랑신부를 보니 안쓰러움도 크다. 신혼여행은 베트남 배낭여행.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길^^
토요일에 광운대 국어국문학과(부) 동문회 창립 총회가 있었다. 그러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결국은 밤을 꼴딱 세고, 새벽에 나오고야 말았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밤새도록 이종격투기를 벌였다. 한편으로 실망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발 다가선 것이고,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라고 자평한다. 첫 번째 글은 새벽까지 있었던 누군가에게 보낸 잡다한 메일이다. 후배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그이의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우리 학과 동문회의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게 나에게는 큰 행운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글은 총회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머릿속에서 이종격투기를 벌였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는 글이다. 무엇..
6명의 인물들이 등장해 각각 밥딜런의 일생을 보여주었던 영화. 하지만 밥 딜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영화의 행간을 읽기에는 그 속도감을 쫓아가기도 힘들뿐더러, 여러 배우들의 연기들이 각각의 파편화로 인해 난해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과 예술가가 분리되고, 노래와 가수를 함께 바라보지 않으며, 예술가가 살아야 하는 삶과 시대를 작의적으로 동일시하려는 이들에게 영화는 예술가가 살아야 할 삶의 무게를 진지하게 말해주고 있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엔딩자막이 올라오며 흐르는 노래는 어쩌면 시대에 희생당하는 예술가의 좌절을 담은 것처럼 슬프게 슬프게 흘러갔다. "Knock knock knocking on heaven's door"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밥먹는다. - 무슨 반찬 - 개구리 반찬 - 살았니? 죽었니? 아마도 누구나 기억하는 전래놀이의 노랫말이다. 여기서 개구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에 따라 놀이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아무튼 삶과 죽음은 이 놀이에서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죽은 고기를 먹고 있다.(물론 가끔 '산낙지'도 먹어주고 있다) 불이라는 문명의 매체를 이용해 안전하게(?)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는 후배는 채식주의자다. 유감스럽게도 그 후배와 술한잔도 못해봐서 채식주의자의 생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살아가야할 이 세상은 보통의 사람보다 몇배는 힘들 것..
"그럼 본인은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처벌을 원하십니까?" 근로감독관은 그렇게 물어봤다. 바로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한때나마 같이 한솥밥을 먹고, 시답지 않은 농담도 주고받으며 웃기도 했던 사람이다. 왕따도 없었고 따돌림도 없었다. 업무적으로도 과중한 스트레스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으니, 사실상 회사생활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네...." 내가 누군가의 처벌을 원하느냐를 따지는 지금의 노동법이 야속하다. 이건 화장실벽에 낙서한 친구를 선생님께 고자질하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처벌을 원하냐'는 근로감독관의 얘기에 선뜻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허나 나의 이런 머뭇거림과는 상관없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근로감독관의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에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