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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2. 아침 자전거 출근 10.4.
🏁 2021년 누적 주행거리 184km


도라지를 다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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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해 정도 된 이야기다. 교과서 마감을 하고 힘겹게 집에 오는 길이었다. 개봉역에서 개찰구를 나와 계단을 내려와서 광장 쪽으로 나가면 그 길위에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가 있었다. 하루는 그 도라지를 좀 사려고 했다.

"좀 싸게 해 줄 수는 없습니까?"
"도라지 한 봉다리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저 앞에 마트가서 사시구랴."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한마디 대꾸 후 그 할머니는 계속해서 한켠에 쌓여있는 도라지를 다듬었다.

"알았습니다. 그럼 도라지 한봉지 주세요."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끊을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응?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나도 기가 막혀서

"아니 옆에 다듬어 놓은 도라지 있지 않습니까. 할머니 에누리 안할테니 그 옆에 다듬어 놓은 도라지 주세요."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글쎄, 그것도 아직 다 다듬은 게 아니라오. 도라지는 제대로 다듬어야지, 다듬다 말면 흙 씹기 딱이야."
"그럼 마음대로 다듬어 보세요. 기다릴게요"

속으로는 '이 따위로 장사하니 그 나이 때까지 이렇게 길가에 앉아서 도라지나 팔고 있지. 도라지가 거기서 거기지. 할머니가 불쌍해 보여 한봉지 사가려던 생각이었는데. 에이 참."

도라지를 다듬던 할머니는 잠시 도라지를 손에서 내려놓더니 우두커니 건너편 야채 가게를 쳐다보고 있다. 이 가게는 역 앞에 있는데다가 주변 아파트 사람들에게 값싸고 물건 좋다고 소문난 집이었다. 게다가 카드 안받고 현금 장사만 하고 있어 하루 매출이 장난 아닐 거라는 소문도 들리던 곳이다. 그런데 이 가게가 이상하게 도라지만 팔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니 노인이 다듬은 도라지를 봉지에 담아 내민다. 값을 치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도라지를 내주고 그 할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보, 그 할머니 이야기를 아파트 아주머니에게 들었는데, 사실 그 도라지 다듬는 할머니가 개봉역 야채상가 빌딩 건물주래. 맨날 그 앞에서 야채가게 지켜보는 재미로 그 앞에서 장사하는 거라고 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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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표절과 패러디 사이에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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