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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서울둘레길4-1]사람을 살리는 길 본문

생활 여행자/걷고 또 걷고2017

[서울둘레길4-1]사람을 살리는 길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7.06.30 18:17


6월 11일(일) | 총 10.3km | 매헌역-양재시민의 숲-대한항공 폭파 사건 희생자 위령탑(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위령탑)-여의천-내곡동 주민센터 근처-구룡산 주변길-대모산 주변길-수서역


일요일 아침을 이렇게 서둘렀던게 얼마만일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준비했다. 짐은 아내가 미리 전날 준비해 놓는다. 꼼꼼하게 챙겨놓은 짐들을 보면 이 도보길 여행에 대한 그이의 바람이 보인다. 길과 숲과 바람에 목말랐던 사람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보인다. 길을 걸으며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갖는 열망이다. 왜 사람은 이 스피드한 세상, 편리한 세상에서 굳이 피곤하고 힘든 일을 자처하며 쾌감을 느낄까? 이미 여러 과학자들이 밝힌 바 있다. '러너스 하이'. 또는 '운동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미국 심리학자 멘델이 논문에서 처음 밝힌 용어는 '엑서사이즈 하이'였다. 그는 이것을 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신체적 스트레스로 얻게 되는 행복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몸은 일정 시간동안 운동을 계속하면 뇌에서는 '베타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물질이 마약성 물질을 투여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운동의 행복감을 알고 기꺼이 힘든 운동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나 나나 몇 시간 동안 걷는 것에는 익숙하다. 젊은 시절 일년에 몇 번씩 지리산 같은 산을 오르고 내렸다. 걷는다는 것에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벅찬 기대감이 몰려오는 이유다. 이날 가야할 길도 10km가 넘었다. 두 개의 산길을 걸었다. 산이 작다고는 해도 산은 산이다. 오를 때에 근육에 오는 뻐근함이 있고, 내려올 때는 관절에 오는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지만 나무와 풀이 주는 숲의 향이 있고, 사박사박 밟아가는 흙길의 정겨움도 있다. 새들의 지저귐이 연한 바람을 타고 귓속을 간지럽힌다. 


아이가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숲은 숲대로 아이를 보듬어 안고 가고, 아이도 아이대로 이겨낼 거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부모의 보호는 보잘것 없다. 그것을 아이도 알아갈 거다. 더 큰 세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 



 양재 시민의 숲에 다시 들어가서 


 양재 시민의 숲에 다시 들어가서 


 대한 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이날의 첫 시작점인 양재시민의 숲 공원에는 역사의 슬픔들을 위로하는 공간이 여럿 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대한 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을 만날 수 있다. 이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공중 폭파된 사건이다. 이 테러를 실행한 것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이며 이 둘이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러 조사 과정에 대해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선거 하루 전 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서울에 압송되어 온 것과, 하필 비행기 탑승 인원도 중동에 진출했던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안기부의 기획이 아닐까라는 의심이다. 또 김현희에 대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전격 사면도 의혹을 더욱 키웠다. 그러나 2006~20007년 진실규명위원회의 조사[각주:1]에서도 밝혀진 사실은 북한의 테러였다는 것이며, 북한측 인사가 간접적으로 자신의 행위였음을 시인하는 발언[각주:2](기사보기)도 있었다. 물론 이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정부 관계자들의 모의가 있었다는 것도 진실위가 밝힌 사실이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인도양에 잠들어 버린 115명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이 이곳에 있다. 대한항공 폭파 사건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이다. 진실만이 오직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건을 다른 의도로 이용하려 하면서 진실이 가려질 때, 아픔은 커지고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양재시민의 숲에는 또 다른 위령탑이 하나 더 있다. 둘레길에서 벗어나 있어서 둘레길 여행자라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어렵지만 여기에는 '삼풍 참사 위령탑'이 있다.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29일 붕괴하면서 502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 실종자 6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의 참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은지 10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 무너져 버리게 한 원인은 부실 시공과 설계 변경, 그리고 이것을 뇌물을 받고 눈감아준 공무원과 관리 기관의 부실 감독, 결정적으로 긴급 안전 진단을 한 설계 감리 회사가 '붕괴 우려'를 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에 눈이 멀어 영업을 강행한 사업주 등 총체적인 부실의 결과였다.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은 비용을 이유로 생략되거나 무시되었다(관련 자료: 위키백과 바로 가기). 총체적 부실과 돈을 향한 욕망으로 점철된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결국 2년 뒤 대한민국의 붕괴로 귀결됐다. IMF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급속 성장 속에서 용인되었던 자본주의의 욕심을 눈감고 인정했던 처참한 결과였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폭주하는 기관차 위에 승선해 있다. 삼풍백화점의 저주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되돌아왔다. 천박한 자본주의를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들여 놓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생명을 담보로 한 탐욕의 괴물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 어린 목숨들을 물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이런 아픈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도망치듯 양재시민의 숲을 통과했다. 그곳을 나오면 여의천으로 내려선다. 여의천은 양재천으로 흐르는 지류이다. 별다른 휴식 공간도 없으며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길도 좁고 포장 상태는 거칠다. 중간에 다리 밑 터널은 비오는 날이나 흐린 날이면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듯하다. 대개의 지류가 그러하듯이 찾아오는 이는 우리같은 둘레길 여행자 몇몇이나 마실나온 동네 주민 정도일 것이다. 간간히 두루미도 보이지만 먹을 것이나 있겠나 싶을 정도로 물은 말라 있었다. 


여의천을 잠깐 걷고 내곡동 염곡안 길로 접어든다. 전원마을 같은 공간으로 주변에 밭도 있다. 하지만 둘레길 옆의 염곡 마을은 높다란 담장에 고급스러운 집들이 즐비하다. 아파트숲에서만 살다가 잘 가꾸어진 단독주택들 사이로 걷다 보니 눈이 바쁘다. 마을 옆을 지나면 구룡산 산길로 접어 든다. 

 


 양재 시민의 숲을 나와서




 여의천을 걷는 중 




 내곡동 염곡 마을 으리으리한 저택 옆 



구룡산은 높이 283m 높이의 야트막한 산으로 관악산, 우면산, 청계산 등과 산자락이 이어진다. 구룡산이라는 지명은, 옛날 열마리의 용이 승천하는데 그 모습을 본 임신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자 그 소리에 놀라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남은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흔적이 산이 되어 구룡산이라고 이름붙여졌다고 한다(출처:향토문화전자대전). 그런데 왜 이 전설에서는 하필 임신한 여성이라는 특정한 사람이 나올까? 아마도 다산에 대한 욕망과 함께 모성은 승천하는 용도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옛사람들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구룡산의 주봉 국수봉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서울 일대 및 한강 하류와 상류 지역까지 전망하기 좋은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 야경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구룡산 산자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와 권력이 집중된 서울 강남구의 산자락을 걷는 기분 또한 묘하다. 구룡산 터널을 지나 언덕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일요일 등산객들이 분주히 오갔다. 우리 아이 또래는 볼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있어 좋다.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자락에서 먹은 점심-김밥



구룡 터널 지점을 지나면 곧 대모산이다. 산 산자락을 걷다보면 행정 지역으로는 서초구에서 강남구로 넘어간다. 대모산은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고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원경 왕후와 조선 태종을 모신 헌릉이 내곡동에 자리하면서 어명에 의해서 ‘대모산(大母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는 것과 구룡산 봉우리와 함께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고 하여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출처: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태종의 헌릉 신도비에는 대모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남겨져 있다. 

장백산[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와 남쪽으로 수 천리를 넘어 상주 속리산에 이르고, 여기서 꺾여 북서쪽으로 또 수 백리를 달려 과천 청계산에 이르며, 또 꺾여 북동으로 달려 한강을 등지고 멈추었다.

백두산의 산줄기가 여기서 멈추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산을 신성시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산 그늘을 따라 걷다 보면 산의 향기가 진하게 전해져 온다. 구룡산에 비해 가꾸어진 흔적이 많았다. 유아 숲체험장이 있는가 하면 근처 주민들을 위한 체육 공원도 많다. 청소년 자연학습장도 마련되어 있다. 


대모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돌탑들이 있다. 돌탑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는데, 서울 강남 일대를 비롯해 최근 들어선 초고층 빌딩 롯데 타워도 가까이 보인다. 이 돌탑들은 임형우라는 사람이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15년에 걸쳐 쌓아올렸다고 한다. 그도 처음에는 그냥 이곳이 좋아 돌 몇개를 쌓아놓는 것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돌들을 하나씩 둘씩 쌓아 올리니 누구도 따라하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그런 일상에서 돌 하나가 가져온 힘이다.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일만시간의 법칙이다. 


'일만시간의 법칙'은 맬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뉴요커" 기자)이 쓴 "아웃라이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루 3시간씩 10년이면 1만 시간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각주:3]  한 사람이 15년 동안 돌을 쌓으면서 염원했던 내용은 소박했다. 하지만 소박한 염원의 결과는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걷고 있는 우리의 바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오늘도 아이는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걸었다. 그리고 많이 지쳤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걷다보면 시간은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할 것이다. 때로는 그 목적지나 여정이 우리의 바람에 못 미칠 수도 있고, 바람과 햇볕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야 한다. 인생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아니다. 산비탈과 계곡, 구릉과 능선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이 둘레길을 걸으면서 아이도, 그리고 나도 참고 인내하며 인생의 멋과 맛을 알아가길 기대한다.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유아 숲 체험장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돌탑 전망대


 대모산 돌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대모산에서 수서역으로 




  1. 안기부 조작설 등은 사실이 아니며 북한대남공작조직의 주도에 의해 김현희와 김승일이 자행한 테러로 단정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다만 대선 전에 김현희를 국내로 압송하기 위해 안기부 등 10개 기관이 합동으로 실무대책본부를 운영하는 등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오히려 각종 의혹을 유발하게 된 측면이 있다. — 국가정보원 (2007). 《(과거와 대화)미래의 성찰, 1 : 국정원 「진실위」보고서·총론》. [본문으로]
  2. 정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3∼4년 전 중국에서 6자회담 때 사석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리근 미국국장 등 북한 당국자들과 얘기를 나눴다"며 "당시 리근 국장이 `우리는 KAL기 사건 이후 한번도 테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본문으로]
  3. Brooke N. Mcnamara, David Z. Hambrick, Frederick L. Oswald가 주도해 미국 미시건대, 라이스대, 사우스일리노이대, 영국 브루넬대, 호주 에디스코완대 3개국 5개 대학에서 음악과 체스 실력에 관한 88개의 논문을 메타 분석을 해 본 결과, 에릭슨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논문 <음악, 게임, 스포츠, 교육, 경력에서의 의도적 연습과 기량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in Music, Games, Sports, Education, and Professions>에서 그들이 음악, 스포츠, 체스 등에서 1만 시간의 법칙 – 즉 연습량과 퍼포먼스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분야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지만 설명이 되는 부분이 고작 30%에도 미치지 못했고, 심지어 학업의 경우 무려 4%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출처: http://ppss.kr/archives/247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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