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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입구에서 시작해 사당역까지 걸었다. 5.8km의 코스로 5-2보다 짧다. 


날은 여전히 좋았다. 관악산 입구에서 좌판을 벌린 노점상들이 부지런히 가게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가로운 오후의 시작을 알리는 가게들 사이로 우리 가족의 둘레길 여행을 시작했다. 아이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밝다. 전날 여의도 물빛 공원에서의 물놀이가 무척이나 즐거웠나 보다. 이날도 즐거운 가족나들이로 한껏 들떠 있었다. 


서울대 정문에서 바로 둘레길을 찾지 못해 약간 헤매었다. 등산복을 입고 오가는 사람들을 따라 서울대 안으로 들어가 보다가 다시 지도를 자세히 보니 잘못된 길이다. 서울대에서 낙성대로 가는 길은 서울대 정문을 보고 왼편으로, 서울대를 오른쪽에 끼고 걸어야 한다. 표지판도 그리 되어 있건만, 둘레길 초보자의 흔한 실수이다. 가야할 길이 멀지 않으니 길을 잘못 들어도 여유롭다. 쉬엄쉬엄 걷기, 놀면서 걷기, 천천히 걷기, 도란도란 걷기... 아이와 함께 걷기 위해 필요한 원칙이다. 


얼마 안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낙성대까지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숲길이 이어진다. 5-2코스가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면 여긴 자연그대로의 숲길이다. 오르고 내리고 타박타박 걷다 보면 5-2코스에 비해 지루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람과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루한 아이는 금방 지쳐했고 어깨가 축축 늘어졌다. 아이를 달랠 엄마의 한 마디. "조금만 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자~"


낙성대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공원 가게로 들어갔다. 이 가게에서는 자전거도 대여해 주는지 자전거를 빌리려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이런 날에는 '쭈쭈바'를 먹어야 한다는 아내의 주장에 셋이 다 쪽쪽 빨아 먹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야외 의자에 앉았다. 고요한 숲속을 거닐다가 가까운 도로에서 들리는 차량들 소리를 들으니 무척 시끄럽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피곤도 몰려오는 기분이다. 아내는 이내 쭈쭈바 빨면서 걷자고 우기기 시작했고 나이 마흔 넘은 중년의 배나온 아저씨가 쭈쭈바 물고 다니는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낙성대(落星垈), 별이 떨어진 자리. 이곳에는 사당이 있는데, 사당의 주인은 고려시대의 무장 강감찬 장군이다. 이곳은 그가 태어난 터라고 한다. 그가 태어날 때 별이 떨어져서 이곳 이름을 낙성대라고 지었다. 강감찬 장군은 고려 현종 때 쳐들어온 거란(요나라)의 대군을 물리친 귀주대첩이 유명하다. 84세까지 살았고 무신으로는 우리나라 3대 대첩(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도대첩)의 하나인 귀주대첩을 이끌었으며, 문신으로도 고려 때의 최고위 관직인 문하시중까지 올랐으니 그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들이 숱하게 많이 내려오지 않을 수가 없다. 출생 설화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전해져 왔던 것일 거다. 옛이야기에서는 왕마저도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떠받들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강감찬이 3군을 거느리고 개선해 포로와 노획 물자를 바치니 왕이 친히 영파역(迎波驛)까지 나가서 맞이하는데 채붕(綵棚)을 맺고 풍악을 치며 장병들을 위해 연회를 배설했다. 왕이 금으로 만든 여덟 가지의 꽃을 손수 강감찬의 머리에 꽂아 준 후 왼손으로는 강감찬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축배를 들어 그를 위로하고 찬양해 마지않으니 강감찬은 분에 넘치는 우대에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의를 표시했다.

- 《고려사》 권 94, 〈열전〉 제7, 강감찬


걷기 여행이 여유 있게 걷는 건 좋은데, 낙성대 안을 두루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걷다보니 걷는 속도는 많이 느렸고, 다른 길로 빠져서 힘과 시간을 쓰는 게 어렵다. 낙성대안 강감찬 장군의 사당까지도 가보지 못하고 다시 옆길로 들어가 서울 둘레길을 마저 걸었다. 


▲ 출발 전 한껏 신난 아이


▲ 선풍기도 목에 걸고... "아빠, 이 길 맞아?"


▲ 걷기에 빠진 아내. 좁은 길에서는 아내가 앞에 서고 뒤에 아이가 서고 내가 맨 뒤에 서서 걸었다.


▲함께 걷는 엄마와 딸


▲ 도로에서 옆길로 빠져 산길로 들어섰다.


▲바닥에는 나무에서 나온 꽃잎들이 잔뜩 떨어져 있다. 


▲가면서 나무도 한번씩 만져 보고...


▲ 5-1코스는 관악산의 북사면을 걷는 길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산길이 대부분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잎이 땅을 뒤덮었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5월의 하순


▲낙성대에 들어섰다.


▲낙성대 안국문 앞. 여기서 둘레길은 안국문 안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른편 길로 빠진다.


많이 쉬었다 걸어서 그런지 아이는 더 힘들어 했다. 낙성대를 지나 다시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 산길이다. 이런 길이 관음사까지 이어진다. 낙성대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서자 하얀 꽃잎들이 하늘하늘거리며 떨어진다. 낙화(落花). 오후의 햇살 사이로 떨어지는 꽃잎들이 반짝거린다. 떨어지는 꽃잎을 맞으며 하얀 꽃길을 걸으니 다른 세상에 온듯하다. 숲은 계절에 따라 바뀌고 자연은 오묘한 조화 속에서 자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우린 그저 바라보고 느끼면 될 뿐. 숲이 주는 따뜻한 선물에 마음이 녹아든다. 


쉴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우리 세식구 누울 돗자리 깔만한 공간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5-2코스의 그 소나무 숲이 흔한 게 아니다. 낙성대 이후 이어진 길에서는 그리 오래지 않은 여러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간신히 좁은 터를 발견하고 김밥을 먹고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잡고 다리를 쉬었다. 아이의 생명력은 팔닥팔닥 거리며 다시 살아나 재잘거리기 바쁘다. 잠깐 누워서 숲의 공기와 바람을 느껴 보는 우리만의 의식도 가졌다. 


낙성대에서 이어진 숲길은 다시 관음사까지 줄곧 이어진다. 산중의 절이 다 그러하겠지만 고즈넉하고 조용하다. 큰 절이 아니라서 그런지 일요일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다. 절 중앙에 샘이 나오는데, 보기에도 시원하고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린다. 한모금 들이키고 다시 절을 본다. 관음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찰이다. 관음보살(觀音菩薩)은 '중생의 소리를 본다'라는 뜻으로 중생이 말하는 소리를 보고 구제한다는 말이다(용어풀이). 불교를 믿는 것은 아니나 무릇 베풀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상대의 말을 듣고 눈을 맞추어야 하는 법이니, 관음보살의 존재가 그것을 알려 준다.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얼마나 잘 듣고 이해하려 하는가. 가까이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아이, 형제자매의 말도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의 그런 답답함이 관음보살에 투영되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가족은 관음보살 앞에서 각자의 기도를 마음 속으로 올렸다. 사람들의 간절함은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지쳐서 어깨가 처진 아이


▲힘들어 하는 모습. 지난번보다 구간은 짧았지만 전날에 이어 이날도 많이 걷다 보니 힘들어 했다. 


▲ 떨어지는 꽃잎, 산길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하얀 꽃잎들이 뿌려져 있었다.


▲산 중턱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 다시 손 꼭잡고 힘내서 걷는다.


▲ 누워서 발을 모아 보자. 애쓰는구나. 


▲ 무당들이 제를 올리는 작은 동굴


▲기운내서 씩씩하게 걷는다. 


▲숲길 곳곳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봄꽃들


▲관음사


▲관음보살. 남성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여성이라는 것이 주요 학설이다. 


▲저 바가지들은 치우고 찍을 걸 그랬다.


▲맑은 물이 흘렀다. 한 모금 마실만 하다. 


▲300년된 느티나무가 절 한 가운데에 있다. 큰 나무가 있는 집은 얼마나 편안한가.


▲사당역으로 가는 주택가 화단에서 만난 꽃. 참 예쁘고 신비로롭다. 꽃잎이 안과 바깥에 따로 있다. 





우리가 걸어온 거리

 - 이날 걸은 거리: 5.8km  

 - 올해 걸은 거리: 12.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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