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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리고 예보에서는 저녁부터 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틀전에 7km가 넘는 둘레길(4-1코스)을 다녀온 뒤라 그냥 쉬려 했지만 아내는 다시 걷고 싶어 했다. 다리가 아픈데도 걷고 싶단다. 결혼 전까지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던 처자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면서 묶여 지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요 몇주 둘레길 걷기를 시작하면서 여행에 대한 바람이 폭발한 것이다. 물론 아내의 바람만 있던 것은 아니다. 나도 새롭게 가정을 꾸리며 안팎으로 좌충우돌 살다보니 어디를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별로 없다. 1년에 한번도 여행을 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작은 보람과 기쁨, 그리고 기분좋은 노곤함이 묻어나는 이런 여행을 세 식구가 누릴 수 있다는 건 괜찮은 일이다. 


구름 잔뜩인 6월 6일 현충일. 안양천 길은 그늘이 별로 없을 거라 예상했었다. 내가 자전거로 다녔던 길과 비슷할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양천 구간은 잔뜩 흐리거나 비올 때 걷기로 했었다. 이날이 그랬다. 잔뜩 흐린데다가 오후 늦게 비 예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안양천길은 그늘 구간이 생각보다 아주 길었다. 해가 쨍쨍한 날에도 충분히 걸을만 했다. 


이날의 여정은 석수역에서 시작했다. 석수역에서 구일역까지의 거리는 7.8km. 이틀전 걸었던 거리와 비슷하다. 또 천변가 길을 걸으니 오르락내리락하는 산의 둘레길과는 천양지차. 둘레길 안내 사이트에서도 '초급' 코스로 나와 있다. 설렁설렁, 놀며쉬며, 이짓저짓 딴짓하며 걷기 좋을 코스라고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였다. 


석수역을 나와서 주택가를 지나 천변 도로가를 걷다 보면 준공장지대를 지난다. 좀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조금만 가면 안양천변으로 들어가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움이 기다렸다. 바로 보행자 전용도로. 사실 자전거로 안양천을 오갔던 적이 많아서 자전거길 옆의 보행자도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석수역에서 구일역까지 연결된 구간에서 자전거와 보행자가 나란히 걷는 구간은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보행자 전용도로로 걷는다. 간혹 가다가 자전거가 오가긴 하지만 실수이거나 일부 생각없는 사람들일뿐 자전거를 가지고 가더라도 끌고 다니라는 안내판이 있을 정도다. 보행자 전용 도로라고 좁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폭이 족히 3m는 남짓한 길이 대부분이다. 큰 도로를 활개치며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걷는 즐거움도 배가 된다.  


 석수역에서 1번 출구는 관악산으로 향하는 5코스, 2번 출구는 안양천으로 가는 6코스 구간이다. 


 석수역을 나와 만난 둘레길 리본. 누군가가 리본에다가 화투 한 장을 꼽아 놓았다. 

목단(모란)으로 화투의 6번 그림이다. 둘레길의 6번 코스를 알리기 위한 재미있는 장치일텐데 

아마도 모르고 가는 사람이 많을 듯


 주택가를 나오면 도로가를 걷는다. 오가는 차량에 주의한다. 

준공장 지대라서 소움과 먼지가 날릴 수 있다는 것도 주의한다. 


 예전에는 자전거 도로였을텐데, 지금은 보행자 전용 도로이다. 

사람들의 습관인지 가운데 넓은 길보다 좌측 좁은 길로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길 양옆으로 나무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오래 자란 나무들이다. 

머리 위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갔다. 자연스럽게 길 위로 그늘이 지는 구조다. 


 머리 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오른쪽 기찻길 위로 기차와 전동차가 수시로 지나간다. 

서부간선도로 차량 소리는 그리 크지 않은데, 역시 KTX부터 전동차까지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 옆이라 시끄럽다. 




행정구역으로는 금천구와 구로구를 지나간다. 우리처럼 둘레길 여행자의 모습도 가끔 보이지만 대부분 동네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다. 금천구에 속한 안양천 주변은 지금 장미가 한창이다. 금천구에서 조성한 것으로 석수역에서 금천구청역까지 약 2000m 구간을 '장미원'으로 명명하여 가꾸고 있다. 다양한 수종의 장미를 구경할 수 있으며 폭염이나 비에 상관없이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붕 삼아 걸으며 장미를 감상할 수 있다.  전용 산책길답게 휴식 공간이나 의자도 잘 마련되어 있다. 단지 수시로 다니는 기차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서 시끄럽다. 


길에는 다양한 재미 요소도 있다. 자신의 나이대에 따라 통과해 보는 뱃살 점검 구간도 그 하나다. 나도 통과해 보려 했는데, 배가 아닌 엉덩이가 걸리더라. 그럼 뱃살은 안녕한건가? 발바닥 지압 구간도 있다. 예전에 남산에서 만났을 때는 그래도 끝까지 천천히 지나가는 건 되던데, 이날만큼은 결국 중도 포기했다.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끝까지 걸었다. 아무래도 가방이 주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더 힘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지만... 




 석수여-금청구청역 사이 안양천길에서는 이맘때 다양한 장미들을 볼 수 있다. 


 편안한 휴식 공간도 제공한다. 


 다음에는 꼭 통과해야 할 텐데...


 발바닥 지압 코스. 결국 포기했지만, 아내는 끝까지 갔다. 




금천구청역을 지나 지압판 길이 끝나면 안양천 옆길로 간다. 잠시 자전거와 동행하는 길이다. 이때 살짝 비가 오기도 했다. 오후 늦게 온다던 비가 이르게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양천 옆 고수부지 길은 독산역 부근까지 이어진다. 안양천은 경기도 의왕시에서 발원해 군포, 안양, 광명시를 지나 서울의 구로구, 양천구, 영등포구를 지나 한강에 이른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악취가 진동하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곳이었고, 여름이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주변 일대가 물난리를 겪곤 했는데, 이제는 비교적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떼도 보이며, 철새들이 찾는 공간이 되었다. 


안양천 천변의 들꽃을 꺾어다가 예쁜 꽃다발을 만들면 아이는 나비를 쫓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쁘다. 비가 살짝 비치기 시작했지만 그럭저럭 맞을만 했다. 그러다가 독산역 부근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안양천의 명소 벚꽃길이다. 서울에서 벚꽃길하면 여의도가 유명하지만 여의도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구일역까지 3.4km에 다달하는 벚꽃나무 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박동우님의 벚꽃길 사진 보기) 지금은 벚꽃도 없고 버찌들이 떨어지면서 길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푸르른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아이가 가리키는 곳은 어디였더라... 





 카메라를 놓고 가는 바람에 아내와 내 핸드폰으로만 찍은 사진들. 안양천 옆 고수부지의 꽃들  



 비가 비치기 시작해 아이는 준비한 비옷을 입혔는데, 이내 벗고 다녀도 될 정도로 빗발이 약했다. 


 벚꽃은 졌지만 노란꽃들이 가득했다. 유채꽃은 아니고... 



 벚꽃 터널



이날의 목적지 구일역 근처는 공사중이었다. 둘레길을 다시 가꾸는 공사로 보였는데, 제대로된 안내판이 없어서 좀 고생했다. 결국 아래 사진에서 보듯 하천길로 내려가기 위해 강둑길을 거칠게 내려가야 했다. 그 길도 사람들이 오가다 보니 생긴 임시길이다. 구일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가도 되는 거리. 마지막에 아이가 삐져서 나와 아내한테 한소리 들은 것 빼고는 무척 즐거운 날이었다. 구일역의 대형마트에 들러서 모자도 하나씩 사고 다음 둘레길을 기약했다. 


 구일역 주변 - 여기는 흙길이 조성되어 있다. 


 준비해간 김밥과 주먹밥, 구일역에 도착할 즈음 빗줄기가 제법 세서 세 식구 모두 우비를 걸쳐 입었다. 모자도 하나씩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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