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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살기 힘든 인간에게 500년, 1000년의 시간은 영원과 동의어다. 큰 산에는 천년을 살아온 주목이 있고, 오랜 사찰이나 향교에는 그곳의 역사만큼 살아온 은행나무가 있다. 시골의 동네 어귀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그곳을 떠났던 사람들의 추억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 은행나무는 도심 길거리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 예전에 플라타너스가 주종을 이루던 가로수를 얼마전부터 은행나무로 교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무가 산에서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아마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나무는 우리 땅에서 스스로 싹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은행나무들은 어떻게 자라서 도심의 길가를 채우고 있는 것일까. 얕은 지식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은행나무는 중생대부터 지구상에서 살아와 지금까지 유전자를 이어오고 있다. 이 때문에 다윈은 은행나무를 들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렀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1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도 있고, 의상대사의 지팡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느 것이든 천년의 세월에서 비롯된 가상의 이야기겠지만, 나무가 살아온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성균관대의 명륜당에 있는 은행나무는 그보다 못하지만 500년에 가까운 수령을 보인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대개 사찰이나 사당에 많이 심어진 것들이 많은데, 명륜당의 은행나무도 마찬가지다. 명륜당 앞마당에서는 종종 전통혼례식이 열린다. 내가 찾아간 이날도 지인의 전통결혼식이 있었다. 5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 아래에서 인간은 백년해로의 의식을 거행한다. 은행나무의 기운이 그들을 축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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